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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은 괭이를 죽인다

영혼을 훔치는 사람들, 필립 쿤

by 리엘란 2010. 11. 14.

부제는 1768년 중국을 뒤흔든 공포와 광기.
원제목은 자그마치 soulstealer. 소설 제목이라고 해도 믿겠군요?

시기는 1768년 청나라 건륭제 시기. 저장성을 중심으로 인간의 영혼을 훔치는 비술이 있다, 인간의 영혼을 훔쳐 그 힘을 사용할 수 있다, 변발을 잘리면 위험하다 등의 소문이 퍼집니다. 소문은 불안으로 이어져서, 몇몇 적대자들-떠돌이, 거지, 탁발승과 도사-에 대한 소문과 공격으로 나타납니다. 지방 관리들은 이러한 사건을 전후 사정을 알아본 후 적절하게 대처하여 대강 묻어버리는데, 아불싸 건륭제가 알아버렸습니다? 건륭제는 이 '영혼을 훔치는' 주모자를 찾으라며 관리들을 닥달하고, 강남(안휘, 저장, 강소)  일대에서 시작된 사건은 전국으로 퍼져갑니다.

사실 줄거리 요약을 해놔서 그렇지, 책으로 읽으면 레알 병신미가 느껴지는 이야기입니다. 사건이 끝났다고 생각한 피의자, 피해자, 중간관리, 각 성 총독과 순무들은 갑자기 죽을 맛이었을꺼라는데 100원 겁니다.
전제 왕권에게 왕권 강화와 기강 확립은 언제나 커다란 숙제지요. 정복왕조였던 청나라는 아마 그 압박이 더 강했을 것입니다. 왕권 강화의 방법중에 하나는 왕권의 기반이 되는 정신을 백성과 관료에게 강요하는 것입니다. 조선 후기 예송논쟁은, 현대인의 시각에서 보자면 '참으로 이렇게 밥도 안 나오는 쓰잘데기 없는 문제로 몇년을 이지랄을 하냐? 월급 왜 받니?'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이야기지만, 조선시대 성리학 관료들의 입장에서 보면 국가의 기반이 흔들릴 수도 있는 문제니까요. [각주:1]

하여간, 지금 우리가 '중국인' 하면 떠오르는 변발은, 사실 한족의 풍습이 아니라, 청나라 만주족의 풍습이지요. 청나라는 변발을 한족에게 지속적으로 강요하며, 그것을 청에 대한 복종심으로 보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변발을 잘라간다는건, 건륭제의 입장에서는 청나라에 대한 불복이지요.
건륭제의 또 다른 고민은 만주족의 한족화입니다. 소수민족인 만주족이 다수 민족인 한족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한족을 억누르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모반의 위험이 있으니까요. 때문에 청은 한족 관료를 등용하고, 그들의 정치 체제를 배웠습니다. 문제는 이 경우 소수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그 이전 수많은 정복 왕조가 한족에게 흡수되었던 것 처럼 말이죠. 다수와 구별되는 소수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 건륭제의 고민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중국의 성장입니다. 1700년대 중국은 갑자기 인구가 폭발적으로 성장하여, 전 세계 인구의 25%를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신비함은, 한나라때(기원전 부터!!)부터 약 2만명의 관료로 정부를 유지했다는 점입니다. 하여간 신사층이 있더라도, 이렇게 적은 수의 관료로 국가를 운영한다는 것은, 국가의 통제력이 미치기 어렵다는 점에서 참 힘든 일이죠.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관료들은 무사 안일, 선례 참고, 아부와 살아남기를 목표로 하는 집단이 되어갑니다. 건륭제는 이런 화석같은 집단에 압박을 가하고 자기 뜻대로 움직이는 수족을 갖고 싶어합니다.

저자의 견해는, 건륭제가 이런 상황을 타계하기 위해 이 '1768년의 사건'을 조장했다는 겁니다. 본인이 일으킨건 아니지만, 이 사건을 추궁하는 과정에서 관료들과 백성들에 대한 자신의 권력 확대와 통제 강화를 꾀했다는 것이지요.
18세기 중국은 일반 백성 입장에선 참 피곤한 시대입니다. 갑자기 인간은 늘어났는데, 경작지와 식량은 그만큼 늘지 않았고(맬서스의 법칙), 그러니 일은 많이 하는 것 같은데 들어오는 건 별로 없고('근면 혁명'이라는 개념이 있더군요) . 그다지 달갑지 않은 시대에, 불만은 표출됩니다. 가장 만만한건 역시 부랑아들이죠. 건륭제가 조장한 의심과 공포는 백성들에게 퍼지고, 백성들의 폭력성은 사회의 약자들에게 가해집니다.
이러한 흐름은 지극히 고전적이면서, 동시에 지극히 현재적입니다. 세상이 불안할때, 언제나 일어나는 일이죠. 멀리 갈거 없죠. 한국의 7~80년대 '간첩 공포', 아니 지금의 '빨갱이'만 해도 저 권력층에서 조장하고 사람들이 폭력성을 표출하고 있지 않습니까?

결국 이 병신미 넘치는 이야기는, 피의자(사실은 피해자)들이 죽어나가고, 고문과 심문을 통해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건륭제가 슬슬 정신을 차린 덕에 종결됩니다. 메타데시 메타데시.

책 내용은... 뭐랄까 재밌다기 보단, 정말 병신미가...;; 읽다보면 '이뭐병?'소리가 입에 달립니다.
다만 이 감정은 서술 방식의 영향이 큽니다. 역자도 단점으로 지적했듯이. 저자의 감정-건륭제에 대한 적의랄까-이 매우 노골적으로 전달되는 단어가 많이 쓰이거든요.
또 하나의 단점은, 기본 지식이 없으면 좀 당황스러운 부분이 있다는 점입니다. 청대의 대표적인 행정제도-주접과 주비, 총독과 순무 등-에 대한 설명이 있긴한데, 이 기본 지식이 책 5장에서야 나오면 좀 곤란하죠.

유럽의 '마녀사냥'과 비교해보면 재밌는 주제가 아닐까 합니다. 좋은 책이에요.

영혼을훔치는사람들(1768년중국을뒤흔든공포와광기) 상세보기

  1. 여담이지만 여기서 굳이 9개월 상을 주장한 송시열의 깡에는 정말 감탄이 나옵니다. 그 말은 현종은 정당한 왕위 계승자가 아니라는 소린데?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