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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정-월하영

by 리엘란 2011. 1. 28.

부드럽게 들어오는 아침 햇살을 느끼며, 정은 눈을 떴다.
따뜻한 봄날의 햇살이었다. 그는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만족감은, 침상 옆 빈 자리를 보는 순간 사라졌다. 대신 방 안 다른 곳에서 여인의 나직한 콧노래가 들려오고 있었다.

정은 침상에서 일어나 옷을 대강 끼워 입고 노래가 들리는 쪽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안뜰과 이어진 문가에서, 그녀-월하영-을 발견했다.
그의 차림도 무례한 편이었으나, 그녀의 차림도 가관이었다. 잠자리옷으로도 가끔 쓰이는 긴 두루마기는, 앞섶을 잠그지 않은채 풀어헤친 상태였다. 그 차림새로 문가에 기대어 다리를 쭉 뻗고 앉아 있어서, 옷이 거의 사람을 가려주지 못하고 있었다. 월하영은 그런 모습으로 안뜰을 바라보며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정이 월하영의 정면에 서자, 노래가 멈췄다. 정은 그녀 앞에 앉아, 그녀를 보았다. 옷자락 사이로 전날 그가 남긴 흔적이 잘 보였다. 치열과 피멍, 손자국. 하얀 월하영의 몸에 남은 자욱들이 그의 것이라는 표식이었다. 그 흔적들이 만족스러웠다.
월하영은 서서히 고개를 돌려, 정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언제나처럼 표정이 없었다. 한마리 짐승처럼 안긴 그 날, 강제로 사내의 집에 들여 앉혔진 그 날, 다른 이와의 편지 교환을 막은 그 날 이후로 언제나 그녀의 얼굴엔 표정이 없었다.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은 그 얼굴이 짜증스러워, 정은 팔을 뻗었다. 그리고 한 손으로 그녀의 목을 잡았다. 급작스러운 정의 행동에, 그녀의 눈에 공포가 스렸다. 그 변화가 기뻐, 정은 그대로 손에 힘을 주었다. 그녀는 뒤로 물러서고 싶어도 문틀에 기대 앉아있던 터라 물러날 수 없었다. 월하영은 양 손으로 그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오히려 정의 손에 더 힘이 들어갔다. 목이 졸린 그녀의 입에서 가는 숨소리가 새어나왔다. 그 숨소리는 전날 정사에서 그녀가 토해내던 숨소리를 연상시켜, 그는 흥분했다.

그녀의 눈이 서서히 감겼다. 정의 손목에 가해지던 손의 힘이 약해졌다. 그녀의 눈에 빛이 사라지면서, 공포도 사라지고 있었다. 그녀의 눈이 완전히 닫히자, 그녀의 얼굴은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갔다.
정은 그제서야 손에 힘을 풀었다. 다시 나타난 무표정이 그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황급하게 그녀의 손목을 잡아 맥을 집어보았다. 다행히 그는 가늘게 뛰는 맥을 느낄 수 있었다.

정은 그녀를 방바닥에 눕혔다. 그녀의 목을 젖히고, 코를 막았다. 그리고 입을 열어 숨을 불어넣었다. 그 동작을 반복했다.
몇번이나 계속되었을까. 정은 그녀가 숨을 들이마시는 것을 느꼈다. 정은 그녀에게서 몸을 일으켰고, 곧 월하영은 몇 차례 기침을 했다. 고통스럽게 '스스로 숨쉬는 법'을 다시 익히던 그녀의 눈에 정이 들어왔다. 정은 양쪽 입가를 가늘게 올린채였다. 월하영은 상채만 일으켜, 몸을 뒤로 뺐다. 월하영의 얼굴엔 혐오의 표정이 보였고, 정의 미소는 더 커졌다.
고통스러워하며, 두려워하며, 그래도 정을 노려보던 월하영의 얼굴이 숙여졌다. 정이 다가가 그녀의 턱을 들어올렸을 때, 그녀의 얼굴에선 다시 표정이 사라져있었다. 그 표정을 확인한 그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다시금 손에 힘이 들어갔다.

'도련님, -----께서 찾으십니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만 아니었다면, 그는 그녀의 목을 다시 졸랐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