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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소란-루프 관련

by 리엘란 2015. 10. 13.

그날, 당신이 독살 당했다는 걸 안 그날. 나는 생각했다. 내가 당신과 함께한 시간이 딱 10년이다. 그러니 앞으로 10년 동안 당신을 잊어보자. 당신과 함께 갔던 곳은 가지 않고, 당신과 함께 만났던 사람들과는 연을 끊고, 당신이 무엇을 해냈는지 조차 깡그리 잊어버리자고.
만약 그래도 그렇게 10년이 지나도 당신을 잊지 못한다면, 그때부터 당신을 추억 하자고.

나는 10년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한다. 미뤄온 혼례를 치르고, 아직 통일 된 지 몇 년 지나지 않은 나라를 지키고, 그때까지 그랬던 것처럼 아버지의 노예로 살았다. 그리고 당신이 죽은지 10년째인 그날 깨달았다. 나의 노력은 아무 의미 없다고.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웃는 당신의 얼굴, 지극히 도전적이던 말투, 힘들어하면서도 등을 곧게 세우던 당신의 자세도.
그래서 반란을 일으켰다. 내가 당신을 기억할 방법은 그것 뿐이었다. 이 나라가 당신을 죽였다면, 나는 당신이 만들어낸 이 나라를 부수겠다. 그것만이 당신을 위해 복수할 수 있는 방법 같았다.
나는 왕에게 왜 당신을 죽였냐고 물었다. 답을 몰라서 물은 건 아니었다. 그저 왕이 당신을 죽였다는 이야기가 전국에 퍼지기를, 기왕이면 왕이 당신을 죽였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기 바랐다. 후자는 이뤄지지 못했지만.

당신은 지금의 나를 보며 어리석다 비웃겠지. 네놈은 바보냐? 반란의 최적기는 혼란기다. 다 안정된 나라를 무슨 수로 뒤집으려 해? 네가 한 건 의미가 없어. 이기지 못할 전쟁은 죄악이다.
당신이 나에게 어떤 감정을 갖고 있지 않다는건 안다. 당신은 내 아비의 노예인 나를 간파하고 있었고, 그래서 당신을 살피는 첩자로서 곁을 지키고 있는 나를 알았다. 지나가듯이 왜 나를 곁에 두는지 물어봤을 때, 네놈보다 유능한게 있으면 애저녁에 갈아치웠다 라고 대답했던걸 기억한다. 우습지. 그런 내가 당신을 위해 반란을 일으키다니.
그립다. 당신이 대륙을 통일하기 위해 돌아다녔던 그 십 년간, 나는 당신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당신에게 신뢰 받진 못했지만, 대신 신용 받고 있었다. 당신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 내가 있었다.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당신이 있고, 내가 당신 곁에 있고, 당신이 대륙을 통일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수많은 이들과 함께 하던 그 때로.
지금의 나는 혼자다. 당신은 대륙 통일의 공로를 독살로 돌려받았고, 나는 나로 인해 반란군이 된 이들에게 둘러 쌓여있다.

그는 눈을 감았다. 배와 가슴, 양 다리에서 동시에 통증이 느껴졌다. 그리고 암전 이었다.


일어나세요, 도련님.
도련님이라니, 장가든 지가 언젠데 그런... 아니.
나는 죽었다. 그런데.
대주인님께서 찾으십니다.
대주인? 내 아버지는 내가 반란을 일으키기 직전에 내 손으로 죽였다. 그녀의 죽음에 두 번째로 큰 관여를 한 사람이 내 아버지였으니까.
오늘이 며칠이냐.
네? 오늘은 모월 모일..
그게 아니라, 지금 몇 년이냐고!
Xx년이옵니...
가문의 하녀가 연호를 알 리가 없지. 젠장.
쫓기듯이 방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우중충한 겨울이었던 마지막 풍경이, 봄의 하루로 바뀌어있었다. 눈을 내려 손등을 보자,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검버섯이 가득 피었던 손등이 어린 사내의 그것으로 바뀌어있었다.
다시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책상 한 가운데에 사령장이 놓여있었다. 상장군 백xx의 부관으로 봉한다. 기억이 났다. 나는 이 해 봄부터 백장군의 부관으로서 군에 종사했고, 그 해 가을에 그녀가 백장군을 이기면서 온 대륙에서 유명해졌으며, 그해 겨울 그녀 휘하의 부관이 되었으니까.
즉, 지금의 그녀는 아직 무명의 장군, 아니 군인에 가깝다.
어떻게 된 건지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알 필요는 없었다. 단지 지금,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녀가 죽지 않게 할 수 있다. 그것만 알면 충분했다. 심사숙고하다가 기회를 놓치는 그로서는 기적적일 정도로 빠른 결단이었다.

대충 이런 오프닝... 중간은 아예 없고.... 단지 어떻게 해도 여자가 존잘이라서, 여자의 미래-군공을 세워 유명해지고 대륙 정벌을 명 받음-를 바꾸지는 못함. 절망하는 남자 앞에서 수고했다. 그런데 이제 좀 놔줘. 라고 쓴웃음 지어주는 여자. 여자는 처음에는 기억이 없었지만 마지막엔 회귀했다는걸 깨달음....